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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7.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 기획피정
    • 작성일2024/07/20 15:13
    • 조회 326

    극한폭우라는 단어을 이례적으로 많이 들었던 며칠,

    많은 피해로 얼룩진 아픈 시간들을 넘어서 

    모인 7월 기획 피정에서는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성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학교)이 동반해주셨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묻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하여 

    욥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있는지...

    마음이 가득해도 쉽사리 전체를 만나는 기회를 얻기 어려운 구약성경을

    쉽고 단순하게, 또 만나고 만져지게 길을 열어주는

    수녀님의 욥기 강의를 모두 올려드립니다. 

     

     

     

    2024년 배론의 순교자들 7월 이야기의 주제는 

     

    '성요셉 신학교'였습니다.(1855~1866)

    장주기요셉 성인의 집이었던 이 자리에서 가톨릭 사제 양성을 주목적으로 한

    최초의 서구식 학교 배론 성요셉 신학당은 어떤 과정으로 시작된 것일까?

    옛 베론신학교를 방문한 정규하 신부 일행(1931)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포토갤러리에서

     

    이 신학교의 교수로 재직하였던 푸르티에 신부님과 프티니콜라 신부님은 모두 프랑스 파리외방 전교회 소속 사제들이셨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정신은 파리외방전교회의 대표적인 정신이라고 할 만큼 뚜렷한데

    이미 입회하기 전 교구장의 허락을 받으면 'ad vitam', 곧 '죽을 때까지' 

    정들고 길들여진 고향과 삶의 터전을 떠나 선교지에 헌신한다는 정신으로 양성되기 시작했으며

    받은 신앙의 선물을 목숨바쳐 나누고 전하려는 이들이 모인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구호는 

    놀랍게도 "어떻게 되는 기쁘게"였습니다.  

     

    배론 이전에도 박해의 상황에서도, 아니 박해의 상황이었으므로 더욱더

    목숨바치도록 조선교회를 사랑했던 선교사들은 조선인 사제양성에 가장 큰 염원을 두고 

    지속적으로 신학생을 선발하고 양성을 시도했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전담 사제(다블뤼신부)를 임명하고 배티(성지)에 신학교를 설립하여

    '조선 대목구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조선 대목구 소신학교'에 해당하는 이 초기 양성 기관은

    1850년 배론에서 정주형 신학교로 성요셉 신학당이 세워지기까지

    유학준비를 위한 양성의 단계를 위한 소신학교로서 역할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8월 기획피정에서...  배론 성요셉신학당의 시작과 내용을 더 자세히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

     

    2024년 7월 기획피정에서는 박승용 세례자 요한 신부님(원주교구. 해외유학)이 미사전례를 함께 해주셨습니다. 

     

     

    고통의 일들은 그저 보이는 사람들의 수많은 인생 안에서 겪어지는 허다한 일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면서부터 모든 개개인 인생의 가장 뿌리깊은 화두입니다. 

    결코 사람의 손 안에서 다 풀어낼 수 없는 고통이라는 난제는 

    언제나 '한계'를 온 인생을 통하여 체험하게 합니다. 그리고..........

    보이는 모든 세상의 이치와 명분과 합리를 넘어서는 '보이지 않는 실재'를 의식하게 합니다. 

     

    '고통'은 바로 지금, 나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답과 길을 얻고 싶었던 

    우리 모두의 그 관심입니다.  특히 '의인의 고통'이라는 문제는

    신앙감 안에 있지 않는 이들에게도 당위로 이해되는 인과응보 정의의 공식으로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믿음과 의탁으로 응답하는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시험에로 밀어넣습니다.  

     

    교회의 가르침과 찬란히 쌀여진 영성생활의 성찰들이

    우리를 심오하게도 고통의 '신앙의 신비'로서의 측면'에 마음과 인식을 열도록 재촉하는 것은 사실...

    무엇보다도 신비자체이신 '하느님, 신'으로부터 있게 된 인간'에 대한 자의식에서 출발합니다. 

     

    무수하게도 이해가 되지 않는 삶의 순간들 안에서,

    사실 어떤 때에는 이해가 닿을 수 없는 저 끝까지에 서 있을 때조차도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진실,

    그분의 정의가 오직 선함과 사랑으로 채워져있다는 진실에 대한 신뢰는

    우리를 신앙의 신비에 대한 기뿜과

    자발적인 순종적 의탁이 역설적으로 베풀어주는 자유에로 인도합니다. 

     

    욥기에 대한 잘 정리되어진 성서신학적 안내와 담담한 듯 진솔한 해설의 길잡이를 통하여 

    '삶의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하느님을 부르고 있는 당신,,

    긍정적일 수 없도록 어렵거나 마냥 기쁨을 말할 수 없을 때 조차

    하느님을 의식하며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의 삶의 자리를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그분 앞에 서 있는 당신'은 이미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희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희로애락의 모든 인생국면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신앙생활이 

    세상 안에서 성령께서 위로 받으시고

    세상에 숨결을 전하시는 거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욥기 주해에서의 종결을 빌어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