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땅, 교육의 땅, 성소의 땅 배론에 오신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 구학산 아래 위치한 배론성지는 약 240년을 이어오는 한국 천주교회 역사와 매우 밀접한 곳입니다.
1784년 이승훈 베드로가 북당에서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옴으로써 시작된 조선 천주교회는 양반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퍼져나갔습니다.
그 후 7년 후인 1791년 5월 조상의 제사 문제로 진산 사건이 발생하여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하고 제사 문제가 유교의 기본 사상과 충돌하며 신해박해가 일어납니다.
이 박해로 많은 양반들은 교회를 떠났고, 많은 교우들이 뿔뿔이 흩어져 산 속으로 숨어들었는데, 이 때 이곳 배론 골짜기에 교우들이 숨어들어 교우촌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정조가 승하하고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며 1801년 신유박해가 발생합니다.
이 때 수많은 교우들이 순교를 하거나 배교하여 천주교를 떠나게 됩니다. 황사영은 조선 천주교의 미래를 생각하며 박해를 피해 배론에 도착합니다.
김귀동은 황사영을 맞이했고, 큰 옹기로 덮은 토굴에서 지내게 해 줍니다. 이 토굴에서 황사영은 북경 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백서를 씁니다.
‘조선 땅에 박해가 심해 어려움을 격고 있다고,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비록 백서가 발각되어 중국에까지 전달되지 못하고 황사영과 김귀동이 체포되어 순교하는 과정에서 배론의 교우촌이 무너졌지만 이 땅의 천주교를 지키기 위한 간절한 숨결이 이곳에 남아 있습니다.
42년 후, 1843년 장주기 요셉이 배론으로 이주하며 배론 교우촌이 다시 형성되었고, 1855년 메스트르 신부가 성 요셉 신학교를 설립하자 장주기 요셉은 자신이 살 던 3칸짜리 초가집을 신학교로 사용하라고 내어 놓습니다. 11년간 운영된 성 요셉 신학교는 우리나라 최초로 신학은 물론 철학, 라틴어, 지리학, 수학 등 서양 학문과 문물이 가르쳐진 학교였습니다.
아쉽게도 1866년 병인박해로 장주기 요셉과 두 분의 교수 신부님(푸르티에, 푸티니꼴라), 여덟 명의 신학생들이 잡혀가며 신부가 탄생하지 못했고, 신학교 폐교와 함께 또 한 번 배론 교우촌도 무너집니다.
배론은 또한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님께서 잠들어 계신 곳이기도 합니다. 신학교가 세워질 당시 최양업 신부님께서는 신학교에 머무르시며 열한 번째 편지(1855년 10월 8일)를 쓰셨고, 종종 신부님들을 만나기 위해, 신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배론을 방문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1861년 6월 15일 문경 지역에서 세상을 떠나신 후, 다섯 달쯤 지난 11월,
신부님의 시신을 배론으로 모셔와 베르뇌 장 주교님의 주례로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배론 뒷산에 안장하게 됩니다. 160년 넘는 시간 동안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께서는 배론 뒷산에서 우리나라의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며 영면하고 계십니다.
이렇듯 배론은 황사영 백서가 쓰여진 ‘역사의 땅’, 성 요셉 신학교가 있었던 ‘교육의 땅’, 최양업 신부님께서 잠들어 계신 ‘성소의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질 만능주의와 개인주의를 넘어선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 배론 성지를 방문해 마음을 모아 기도한다면 우리는 다시금 힘을 얻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로, 도구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행복한 순례의 인생 여정이 되길 기도합니다.
- 배론 주교대리 신우식 토마스